방학이 끝났다.졸업식 전까지 일주일 정도 학습활동과 학년 마무리하며 학생들은 선생님은 다른 학교로 갈 것인지, 있을 것인지, 몇 학년을 할 것인지 묻고 나는 살짝살짝 귀띔해주는 재미도 맛보았다.그러나 올해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방학이 끝나도 학생들은 학교에 오지 않고,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학습꾸러미'를 만들어 집으로 전달하고 학생들이 집에서 하는지 마는지 걱정이다. 답답한 날들이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때문이라며 원격수업 및 다양한 방법으로 교육 활동하라는 지침에 따르고 있다.교사로서 할 일을 오전으로 마치고
임인년 새해다.묵은 한 해가 지나고 새로운 한 해가 오면 제야의 종소리를 듣거나 1월 1일 떠오르는 해를 꼭 봐야 한다며 밤잠을 설치며 설레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했었는데…. 마스크 세상이 여전히 진행 중이고, 그래서 그런지 별반 기대없는 새해를 맞이했다.겨울방학이지만 보충수업으로 학교는 한창이었다. 4교시 수업을 마치고 이래저래 교무실에서 정리하다가 점심 먹으러 늦게 급식실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텅 빈 복도, 아무도 없는 불 꺼진 교실에서 한 여학생이 파란 봉투에 쓰레기통을 비우고 있었다."○○아, 점심도 안 먹고
학년 말이 되고 시간 여유가 있으니 지난 일들이 생각난다. 시골 작은 학교에서 근무연한 4년을 넘기고 3년을 더 있었다. 교사 몇몇이 '전남 무지개 학교', '혁신학교' 실천이라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말 열심히 했다. 시작하는 학기마다 새로운 것보다 쭉 해왔던 활동들을 이름만 바꾸어 또 시작하던 타성에서 벗어나고자 과감하게 버릴 것은 버리고 색다른 체험학습을 고민하고 텃밭과 논을 만들고 달마산 곳곳을 탐색하고 다른 학교에서 참관 오면 자랑하듯 설명하고, 작은 분교를 본교로 만들었다는
10월 어느 월요일 점심시간, 학생들이 교내 복도에서 웅성거리는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무슨 일이지?'라는 의문이 들 때쯤, 한 학생이 와서 이런 이야기를 전했다."치즈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쪽 눈이 툭 튀어나오고 코랑 턱을 많이 다쳤어요. 병원에 데리고 가야될 것 같은데요."'치즈'는 지난해 길고양이가 낳은 새끼 중 유일하게 살아남아 성묘가 된 우리 학교의 반려동물이다. 지난해 새끼를 낳은 길고양이 가족을 위해 학생들은 창예동 계단 밑에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물그릇이며, 사료를 챙겨주었다. 점심시간
5~6학년 몇몇은 음악실에 오면 지친 얼굴들이다. 어제도 오늘도 7, 8교시까지 한다고 피곤하단다. 공부 너무 많이 하지 말고 음악도 듣고 노래도 하자고 하면 몇은 뭔 소리냐는 의아한 표정이고 한두 명은 쉬자고 한다.어쩌다 학교가 학력의 높고 낮음을 수량으로 분류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었는지. 어쩌다 학생들이 학습과 성적의 피로에 지치고 있는지 안타까울 때가 있다.오늘도 학생들과 음악 수업하며 공부 너무 많이 하면 머리가 터질 수 있으니 음악도 듣고 악기 하나 정해 연주도 하고 조용한 곳에서 혼자 책도 읽으라고 한다.코로나19와 같
'네모난 책가방에 네모난 책들을 넣고/네모난 버스를 타고 네모난 건물 지나/네모난 학교에 들어서면 또 네모난 교실/네모난 칠판과 책상들' 1996년에 발표된 W.H.I.T.E의 '네모의 꿈'이라는 추억의 노래입니다. 귀여우면서도 가사가 예쁜, 그리고 뭔가 심오한 노래이지만 정작 제대로 가사를 읽으면 '와 정말 그렇네!' 하고 흠칫 놀라게 되는 노래이죠. '학교'라고 하면 이렇게 네모 반듯하고 딱딱한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이 대부분일 겁니다.1955년부터 9년간의 베이비붐으로 폭
얼마 전 점심시간에 1학년 남학생 한 명이 날 보고 말을 붙였다. "국어 숙제로 우리 학교 선생님 중 한 분을 인터뷰해야 하는데, 선생님께서 해주시겠어요?" 몇 마디 대답해주면 될 텐데 어려울 게 뭐 있겠냐는 생각에 선뜻 "그러마" 하고 대답했다.학원이다, 숙제다 해서 바빴는지 한참 후에야 교무실에 남학생 두 명이 찾아왔다. 조용한 교실을 찾아가 마주 앉고 보니 그럴듯한 언론사 인터뷰 분위기인데, 가지고 온 질문들이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적당히 몇 마디 대답하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선생님이 되는데, 무슨 계기가 있었나요?
올해도 한글날 '계기교육' 하라는 공문이 왔던가? 학교 교육과정에 제시되지 않은 특정 기념일이나 시사적인 주제에 대해 이루어지는 교육 활동이 '계기교육'이다여러 '계기교육' 중 한글날에 대한 '계기교육'을 하라고 할 때면 나는 막연했다. 한글의 우수성을 선양하고 한글을 만든 분들의 위업을 추모하기 위한 기념일이라는 말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걱정이었다. 부랴부랴 이미 나와 있는 남의 활동지를 사용하고 지나면 활동지는 쓰레기가 되었다. 내 수업 준비성의 미흡함과 교육 관계자들이
지난 14일 화요일을 기점으로 올해 수시 모집 원서 접수가 마감되었다. 학생들은 수시 원서를 쓰면서 불안함과 초조함에 현재 2학년 담임인 나에게도 상담과 조언을 구하러 온다. 자신들이 선택한 대학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지 불확실하니 선택에 대한 믿음이 필요해서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믿음에 대한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게 고작이다. 우리 아이들이 고생한 만큼 좋은 결실을 맺기를 간절히 바라본다.그런데 이즈음에 벌써 염려되는 부분이 하나 있다. 수시 모집 원서 접수가 마감된 후 펼쳐질 고3 교실 풍경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수시
여름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된 지 벌써 2주가 지났다. 20세기 학교들은 전국의 모든 학교가 9월 1일에 2학기를 시작하였지만, 요즘은 학교장의 재량사항이 되어 여름방학이 끝나는 날에 곧바로 2학기를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다. 따져보면 학기 시작일만 바뀐 것이 아니다. 놀토와 갈토(?) 시절을 거쳐 주 5일제가 전면 시행되면서 학교 수업일수도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학교의 겉보기 환경도 좋아져 냉난방기가 가동되는 쾌적한 교실에서 대형 화면의 전자칠판에 인터넷으로 찾은 시청각 자료를 띄워놓고 공부하는 풍경이 흔하다. 복도에는 정수기
방학 중이다. 학교가 적막하다. 열어둔 창문에는 바람 한 점 없다. 매미들의 아우성에 잠자리 몇 마리가 운동장 하늘 위를 날고 있다.방과 후 활동이 없던 예전에는 방학에도 놀거리를 찾아 아이들이 학교에 놀러와 축구공 좀 달라고, 배구공 좀 달라고, 탁구 좀 치자고, 컴퓨터 좀 하자고 난리였지. 방학이면 모아둔 글을 학교에서 정리하던 나는 '그래, 그래'하고 다 들어주었다가 '근무조'라고 학교에 와 조용히 있고 싶은 선배 여교사와 입씨름도 했었지. 방학이면 집에서 놀지. 학교에 좀 있으려니 시끄러워 죽겠다
세계는 지금 분쟁 중이다. 오랫동안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아프가니스탄 전쟁, 지금은 휴전협정 발표상태인 일명 '5월 전쟁'이라고 불리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하마스 분쟁, 미얀마 군부 쿠테타로 인한 민주항쟁 등 세계 곳곳에서 적지 않은 나라가 크고 작은 분쟁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수없는 분쟁과 전쟁을 겪었으며 지금처럼 전쟁 없는 평화 시기를 50년 이상 지속한 경우는 대한민국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이러한 세계정세 속에서 우리 학생들은 어떠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며 행동하는지 궁금했
해마다 음악 시간에 학생들이 적극적이지 않음을 느낀다. 예전에는 고학년에서 그런 것을 느끼기는 했지만, 요즘은 "저요, 저요" 하며 서로 손을 들던 저학년 학생들도 줄어들었다. 수업! '한 편의 종합 예술'이라는 말이 좋았고, 예술 한 편 만들어 보려고 애도 많이 썼는데 내 역량 부족과 눈에 보이는 성과를 따지는 분위기가 강한 현실에서 수업하는 것이 벅찰 때도 있다. 여기서 '즐거운 음악 수업', '좋은 수업의 조건들'을 깊이 이야기하고 방법들을 나누자고 하지는 않겠다. 학생들이 주도적
수업시간이다. 날은 차츰 더워지고, 학생들은 내 목소리가 너무 나긋나긋해서 잠을 부르는 소리라고 한다. 당연히 여기저기 졸기도 하고, 딴 짓하는 아이들도 생기기 시작했다."경민(가명)아. 선생님 강의에 집중해야지? 바르게 앉으세요."하자마자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거든다."맞아, 경민아 집중해.""선생님, 경민이 지적받은 거지요? 우리 반은 지적받으면 종례 때 남아서 담임 선생님한테 벌 받아야 해요."사실 옆에서 거드는 이런 녀석들일수록 평소 태도는 피장파장이다. 그래도 자기 이름이 불리지 않으면 기고만장해 힘이 난다.처음
지난달 21일에 2022 개정 교육과정 추진계획이 발표되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핵심은 전국 고등학교에서 고교학점제를 시행하여 학생 개별성과 다양성을 고려한 맞춤교육, 미래 역량 함양과 더불어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지속가능한 미래 교육내용 강화이다. 고교학점제의 도입에 따라 2028학년도 대입부터 '논·서술형 수능' 등을 포함한 미래형 수능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고등학교 현장에서는 고교학점제가 시행된 지 3년째이고 많은 혼란 속에서 이제야 겨우 정착되는 분위기가 느껴지는 시점이다. 이에 맞추어 대입 수능도 올해부
내가 사는 마을이나 학교 분리수거장을 본 날이면 어른들도 학생들도 참 풍요롭게 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더 써도 될 물건들이 버려지는 것을 보고 주워다 내가 쓸까 망설일 때도 있다.초·중학교 다닐 때, 나는 미술 시간에 도화지나 물감을 준비하라거나, 교실 환경 구성한다며 주전자나 컵, 쟁반, 거울을 한가지씩 준비해오라는 날이면 학교 가기 싫었었다.시골 학교에 교사로 가서는 미술 수업시간이 무척 부담되었다. 미술용품 풍족하게 쓰지 못했기에 미술은 잘못한다는 농담을 하며 옆 반 선생님과 바꾸어 음악, 체육수업을 하곤 했다. 지금도
봄이다. 상투적인 인사로 만물이 생동한다는 계절이다. 아직 아침이면 선뜩한 바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미 출근길에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차례로 피었다 진 뒤에 학교 언덕 철쭉이 한창이다.순서대로 꽃들이 피어나는 것처럼 이맘때 운동장은 생동하는 아이들의 활기로 가득해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 학교 운동장은 종일 텅 비어 있는 모습이다. 작년 8월 전라남도교육청이 용역을 주어 실시한 인조잔디 우레탄 유해성 검사결과 유해물질이 검출되면서 운동장 사용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코로나 와중에 많은 사람의 노력과 협조로 전교생이 등교하여 걱
월요일 1교시, 3학년과 리코더를 불었다. 안개인지 황사인지 뿌연 하늘 틈을 비집고 내리는 봄볕이어도 좋아 교실 창가에 서성이다 울타리 개나리꽃과 나 사이에 있는 적막한 운동장을 걸었다.개나리꽃 가까이 가지도 않았는데 3교시 4학년 음악은 교과서에 없는 노래를 부르고 연주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쩔 수 없는 교사이다. 2교시 여유시간이 조금 있는 교과전담교사임에도 그 순간을 잠시 맛보지 못하고 다음 수업을 생각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예전에 교무부장을 맡으며 교과전담을 할 때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너무
2021학년도에 학교를 옮겼다. 전에 근무하던 학교는 전교생이 30명 남짓하고 교사 수는 8명에 불과한 작은 학교였지만, 새로 옮긴 학교는 학생 수가 500명을 훌쩍 넘기는 해남에서 가장 큰 중학교로 교사 수도 40명이 넘는 거대(?) 학교다.학생 수가 많아지니 경험하는 풍경도 달라졌다. 절집같이 조용하던 전임지에 비해 쉬는 시간마다 왁자한 아이들 소리가 활기차고, 식생활 교육관(급식소) 앞에는 밥을 먹기 위해 학생들이 줄을 길게 서야 한다. 4년 동안 줄 서서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던 나에게 생소한 풍경이다.무엇보다 크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작은 학교이므로 코로나 바이러스도 관심을 두지 않는지 아무런 문제 없이 작년처럼 이것저것 준비를 마치고 우리 마을을 한 바퀴 돌고 가면서 박사학위 취득, 경찰 간부 승진, 서울대학교 합격, 행정고시 합격이라고 바람에 펄럭이는 현수막을 보았다. 한때 학교 교문마다 펄럭이다 사라진 현수막이 이제는 시골 마을의 자랑을 알리고 있음을 생각하며 빼먹지 않고 꼭꼭 읽었던 시 한 편이 생각났다.'그는 내가 커서 어서어서 커서/사람이 되어주기를 바랐다./농사꾼은 그에게 사람이 아니었다./뺑돌이 의자에 앉아 펜대만 까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