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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벽을 허무는 무한한 상상의 힘 (下)

기사승인 2020.10.16  11: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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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명성(공연 프로듀서)

   
 

해남에 머무는 동안엔 꼭 해창막걸리를 찾는다. 해창 막걸리집 주인장은 늘 푹 삶은 돼지고기와 맛깔스런 김치 한 사발을 막걸리와 함께 질펀하게 내놓는다. 손님을 맞이하듯 그가 정성껏 빚은 해창막걸리 역시, 그 깊은 맛을 보면 탄성부터 절로 나온다. 주인장은 내가 주조장 앞에 있는 100년 넘은 창고에 큰 관심을 보이던 것을 알아차리고는, 올 때마다 창고로 안내해 이런 저런 자랑하기에 바쁘시다.

아직도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은 목조트러스와 무심하게 발라놓은 울퉁불퉁한 시멘트는 100년이 넘게 비와 바람을 막아주며 수많은 물건들의 안식처가 되어 왔을 것이다. 오랜 세월이 간직한 본래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살려 내부시설을 꾸민다면 어디에도 없는 훌륭한 문화공간이 될 것이란 확신이 든다.

이런 소중한 자원이 되는 공간을 행여 다른 목조트러스 창고처럼 흔한 카페로 만들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도록 소극장을 겸한 미술관으로 활용한다면 해남의 큰 관광자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해남에서 쉬어가는 동안 이처럼 주변에 스쳐보낸 많은 공간들을 다시 주목하게 되었다. 그 중에 하나가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으로 승리를 이끈 우수영 울돌목이다. 영화 '명량'의 촬영지로 유명해지면서 이순신 기념관과 명량대첩축제 해상퍼레이드를 보러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왔던 곳이지만, 멀리서 오는 관광객들을 지속적으로 붙잡을 수 있는 콘텐츠가 부족한 탓인지 아쉽게도 현재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많이 멀어진 상태이다.

나는 이렇게 소중한 자원을 가지고 있는 이곳에 멋진 뮤지컬 무대를 상상해봤다. 해상퍼레이드를 단순한 재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같이 첨단 기술적 효과를 더하고, 사람들의 호기심을 유발시킬 수 있는 흥미진진한 콘텐츠로 만든다면 무한한 관광자원으로 탈바꿈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또 해남에는 천혜의 자연을 활용할 장소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국내에서 가장 큰 부지에 리조트, 레저, 교육 등 복합문화공간을 건설 중인 솔라시도 프로젝트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3면의 바다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함께 미래 산업에 발맞춘 이 공간을 활용한다면 '브레겐츠 페스티벌'보다 더 재미있는 우리만의 수상무대 공연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자주 상상했었다. 해남의 관광자원과 더불어 특별한 장소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독보적인 문화콘텐츠들이 생겨난다면 해남은 분명 공연문화의 메카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든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진 상상보따리 중 장소에 대한 것을 하나 더 풀어보겠다. 내 고향 해남뿐만이 아니라 어느 지역을 다녀도 방치하기 아까운 폐교들과 유휴시설들을 활용하는 방안이다. 몇몇 예술가들이 폐교를 활용해 예술을 나누기도 하고 지역의 발전을 위해 교육적인 용도로 쓰기도 한다. 생각보다 크게 활성화 되어 지역에 도움을 주는 폐교가 있는 반면, 잘 활용하지 못해 아쉽게 다시 버려지는 폐교들도 많다. 그렇게 방치되어 있는 공간(폐교)을 보며 난 예술가들과 사람들이 소소하게나마 소통을 하고 있는 모습들을 상상해본다.

전교생이 꼬물거리는 손으로 정성을 다해 기름걸레질을 했던 매끈한 마룻바닥, 온동네 사람들이 모여 축제처럼 즐기던 운동장, 그리고 운동장 한 켠에 항상 그늘을 만들어 주었던 아름드리 나무들. 그 폐교들의 겉모습은 아직도 그 모습 그대로 있지만 지금은 숨을 멈춘 그 공간의 이야기들이 나는 너무 아쉽고 안타깝다.

난 어쩔 수 없는 연극쟁이인가 보다. 어린이들이 뛰어놀며 작은 꿈들을 키우던 곳이 지금처럼 거미줄로 가득 찬 곳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찰 수 있게 내 가슴 속 꿈의 한 조각을 꺼내 심폐소생술을 하고 싶은 두근거림을 느껴본다.

이런 이질적인 장소들에서 펼쳐질 혁신적인 상상들과 나의 마음 속 곳간에 그 동안 차곡차곡 쌓아둔 콘텐츠들이 만나 행복한 폭발을 일으키는 날을 기대해본다.

더욱 새로운 장소를 찾으려는 나의 꿈은 계속 될 것이다. 그 꿈을 향한 걸음 역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작은 상상들이 현실이 될 때까지 나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먼 꿈을 꾸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아직도 그리고 오늘도 그 꿈을 향해 달리고 있다.

해남신문 hnews@h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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