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금자마을서 300명 하객 몰려 축하
김해종·구재경 늦깎이 부부 "감사" 연발
가마·사모관대·족두리 등은 향교서 대여
마을공동체 보조금으로 비용 일부 조달
주민이 똘똘 뭉쳐 준비… 마을축ʏ

▲ 전통혼례를 마치고 인사하는 신랑·신부와 하객들.
▲ 전통혼례를 마치고 인사하는 신랑·신부와 하객들.
▲ 식장으로 향하던 신랑이 타고 있던 가마가 흔들리면서 넘어지고 있다.
▲ 식장으로 향하던 신랑이 타고 있던 가마가 흔들리면서 넘어지고 있다.
▲ 오래전 사라진 전통혼례식이 지난 18일 마산면 금자마을에서 동네축제로 열렸다.
▲ 오래전 사라진 전통혼례식이 지난 18일 마산면 금자마을에서 동네축제로 열렸다.

"행전안례(行奠雁禮), 신랑이 신부의 집에 기러기를 드리는 의식입니다. 기러기는 자손을 많이 낳고 배우자를 다시 구하지 않는 새로 알려져 그렇게 살겠다고 다짐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신부선재배(新婦先再拜), 신부는 먼저 두 번 절하세요. 신랑답일배(新郞答一拜), 신랑은 한 번 절하세요.//"

지난 18일 마산면 금자마을이 주말을 맞아 흥겨운 동네잔치로 들썩였다. 농촌에서도 오래전 사라진 전통혼례식이 열렸기 때문이다. 혼례가 시작되는 낮 12시 이전에 마을 광장에는 300여 명의 하객이 일찌감치 몰려들었다. 이날 하객으로 김해경 마산면 주민자치위원장과 박상현 이장단장을 비롯해 박병욱 마산면장, 장승영 해남농협 조합장, 김병덕 전 해남군의회 의장 등도 참석해 뜻깊은 전통혼례에 박수를 보냈다.

또 신랑·신부가 가마를 타고 혼례식장인 동네 앞 소공원으로 입장하자 하객들은 특별한 전통혼례식을 담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이날의 주인공은 김해종(56) 신랑과 구재경(61) 신부. 신랑과 신부는 마을 청년회가 가마꾼으로 나선 가마를 타고 소공원에 마련된 예식장 입구에 도착해 행진곡에 맞춰 입장했다. 그리고 주례의 선언으로 전통 혼례가 시작됐다. 30분에 걸친 예식은 맞절과 하늘과 땅에 행복한 부부가 될 것을 서약하고 근배례, 행진 순으로 진행됐다. 혼례에 사용된 가마나 혼례복, 신랑 사모관대, 신부 족두리 등은 해남향교에서 가져왔다.

주례 겸 집례(執禮)는 같은 마을에 사는 임창식(74) 전 해남향교 성균관유도회 해남군지부 부회장이 맡았다. 임 어르신은 향교에서 올리는 석전대제나 단군제 등의 집례를 하기는 했으나 전통혼례식의 주례는 처음이다. 임 어르신은 "농촌에서 전통혼례는 70년대 중반 이후 사실상 사라졌다"며 "개인적으로 보람 있고 마을에서도 뜻깊은 혼례"라고 말했다.

금자마을에서 거의 50년 만에 치러진 전통혼례식은 신랑·신부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신랑 김해종 씨는 해남읍 출신이고 신부 구재경 씨는 서울이 고향이다. 해남읍에서 처음 만난 뒤 14년 전 금자마을로 이사해 정식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채 한살림을 차렸다.

하지만 정식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부부는 마음 한켠이 늘 허전했다. 늦깎이 결혼을 예식장에서 하기가 쑥스러웠고, 마을 어르신을 모시고 전통혼례를 올리고 싶다는 뜻을 김연심 마을이장에게 전했다.

9년째 이장을 맡고 있는 김연심 이장은 여러 궁리를 하다 전남 마을공동체 활동지원사업에 신청해 예식비용 일부를 받아 마을 잔치로 열기로 했다. '족두리 쓰고 시집가는 날'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신청해 300만원을 받게 되고, 이를 마을 주민들에게 알리자 한결같이 축하의 말을 건넸다. 서류는 마산면 주민자치위원회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혼례 준비는 이장을 중심으로 마을 주민들이 한마음으로 달려들었다. 오랜만에 동네에서 돼지도 잡고 청년회에서 적극적으로 도왔다. 예식 사진은 목포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호회가 무료로 찍어주기로 했다.

김연심 이장은 "하객들의 점심 뷔페는 신랑이 맡고 나머지는 전남도의 보조금으로 준비하려고 했으나 턱없이 부족해 마을기금으로 충당했다"면서 "45년 전 시집온 이래 동네에서 처음인 전통혼례를 제안받고 준비에 힘들었지만 주민들이 내 일처럼 거들어줘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예식이 끝난 뒤 여흥의 시간에도 마이크를 잡고 "오늘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는데 하나님도 맑고 좋은 날로 축하해주셨다"면서 "모든 하객에게 감사드리고 즐겁게 보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혼례를 지켜본 금자마을 민병채(84) 어르신은 "오랜만에 동네에서 잔치로 열리는 혼례를 보니 1964년 화산에서 올린 전통혼례가 새삼스레 떠오른다"면서 "그때는 신랑이 동네에 오면 탈선이라며 신랑을 테스트하고 때리면서 병신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날 혼례로 떳떳한 부부가 된 김해종·구재경 씨는 "마을 어르신 등 많은 분이 축하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부부가 한마음으로 농사도 잘 짓고 행복하게 살겠다"고 말했다.

한편 48가구, 84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금자마을은 이날 전통혼례를 마을 축제로 이어가고 소공원을 전통혼례 체험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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